정간공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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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품(遺品)

公께서 日常 使用하시던 遺品들은 문중에 잘 保存 되고 있다.

친 필(親筆)

書簡文(서간문)

유 작

원생몽유록 (元生夢遊錄)

원생몽유록 (夢遊錄) 번역문세상에 성은 원씨요 자(字)는 자허(子虛)라는 이가 있으니 그는 비분 강개하는 선비이다. 기개와 도량아 활발하고 사소한 알에 구애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여 여러번 나은의한을 품고 원헌의 가난을 견디기 어려웠다 아침에 나가 밭을 갈고 밤에는 돌아와서 옛사람의 글을 읽는데 등불이 없어 벽을 뚫고 개똥벌레 주머니에 넣어서 등불을 대신하는 등 온갖 괴로움과 고생을 겪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일찍이 역사책을 읽다가 역대 왕조가 위태롭고 망하게 되며 국운이 옮겨지고 세력이 쇠퇴하게 되면 언제나 책을 덮고 눈물을 흘리면서 마치 자신이 그런일을 당하는 것처럼 슬퍼하였다. 중추 가절 밝은 달아래서 책을 펴 놓고 보다가 밤은 늦고 정신이 피로하여 침상에 기대어 졸았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몸이 가볍게 움직이며 멀리 멀리 가는데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얼라가는 것 같이 시원하며 마치 날개를 편 신선으로 화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어느곳인지 강가에 가서 멈추는데 주위에는 맑은 강물이 구비 구비 흘러가고 여러 산들과 골들이 둘러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밤중이 되어 만물이 고요한데 달빛은 낮과 같이 황황하고 물결은 비단같이 반짝이며 기러기는 갈대숲 속에서 울고 이슬은 단풍잎을 촉촉이 적시는데 쓸쓸한 마음이 들어 눈을 돌려 사방을 둘러보니 오랜 동안의 평안치 않은 기운이 서려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때에 길게 휘파람을 불며 부질없이 시 한수를 읊었다

` 「강물도 한스러워 목메어 못 흐르고
갈대꽃 단풍잎엔 찬 바람 불어오네
알겠노라 여기는 장사 땅 언덕인데
임의 혼령 어디 갔나 달빛만이 밝게 비치네」

이리저리 거닐면서 두루 돌아 보는데 문득 발자국 소리가 먼데서부터 이리로 오는 것이 들려 온다 조금 있으니 갈대꽃 밭 갚숙 곳에서 홀연히 한사람의 헌칠한 사나이가 다가 오는데 복건을 쓰고 야복을 입고 이목이 청수 하며 패기있고 늠름한 모습이 마치 수양산 (註④)의 옛 선비와 같았다 앞으로 다가와서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하는 말이
「자허는 어찌하여 이렇게 더디 오십니까 우리 임금님께서 맞아 오라는 분부십니다」 라고 하였다. 자허는 그사람이 산신령이나 물의 정령(精靈)이 아닌가 하여 놀라운 마음에 무어라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가만히 본즉 그의 모습이 준수 고매하고 행동에 여유가 있고 우아하므로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와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여 약 백여보를 따라갔더니 강가에 높은 정자가 있고 그 위에 한사람이 난간에 기대어 앉아 있는데 의관등 모든 것이 임금의 모습이었다 또한 그 곁에 다섯 사람이 임금을 모시고 있는데 모두가 이세상 사람 들 로서 풍신이 당당하고 정신이 양양하며 가슴에는 말을 멈추고 (註⑤) 바다에 뛰어들(註⑥) 의리를 감추고 있으며 뱃속에는 하늘을 고이고 해를 받들 충성을 간직하고 있으니 진정 이들이야 말로 어린 왕자를 부탁하고 한 나라의 운명을 맡길 만한 인물들이었다 자허가 당도하는 것을 보고 모두 나와서 맞이한다 자허는 다섯 사람과는 인사를 하지않고 안으로 들어가 왕 앞에 알현한 다음 다시 물러나와 서있다가 모두가 좌정한 다음에야 맨 끝다리에 무릎을 끓고 앉았다. 자허의 위쪽에는 알 수 없어 매우 불안하게 생각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일찍부터 그대의 훌륭한 소문을 듣고 한번 만나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엿는데 이와 같이 좋은 밤에 반가이 만나게 된것이니 의아하게 생각지 마시오」 라고 하였다. 자허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례한 다음 다시 자리에 앉아 서로 고금의 흥밍사를 의논하며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이야기하는데 복건 쓴 사람이 한숨짓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요, 순, 우, 탕 이후로 세상을 농락하는 자들이 왕위를 물려 받는다고 빙자하며 신하로서 임금을 치면서도 어떤 명분을 붙였으며 이러한 일들이 오랜기간 동안 두고 두고 되풀이되는 동안에 끝내는 바로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아아 이러한 일들은 네 임금때에 발단이 된것이다」라 하였다.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왕이 낯빛을 엄숙히 하고 말하기를
「아니될 말 그것이 무슨말이요 네임금 같은 성군이 있고 또 그시대라면 몰라도 네 사람의 성군이 없고 그 시대가 아니라면 네 임금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다만 명분을 내세우고 빙자하여 임금을 친 자들에게 죄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니 복건을 쓴 삶이 손을 이마에 대고 머리를 굽히며 사죄하면서 말하기를 「마음속이 편하지 못하여 부지중에 말이 지나쳤읍니다」라고 사과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그만두자 좋은 손님니 자리를 같이 하고 있으니 다른 쓸데없는 론란을 할 것 없다 달이 밝고 바람이 맑고 시원하니 이밤을 어떻게 지냈으면 좋겠는가」하며 입고 있던 비단 옷을 벗어 강촌에 가서 술을 사오라 하였다.

술이 두어 순배 돌아 갔을 때에 왕이 술잔을 들고 좌중에 있는 여섯 사람을 둘러 보며 목메인 소리로 말하기를 「경들은 어찌 각각 생각하고 뜻을 말하여 원통한 한을 풀려고 하지 않는가」라고 여섯사람이 말하기를
「대왕께서 노래를 지으시면 신등이 이에 화답하겠읍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여기서 초연(然)한 안색으로 옷깃을 바로하고 슬픔을 차지 못하며 이렇게 노래하였다.

임금이 노래를 마치니 다섯사람이 각각 노래 한 구절씩을 불렀는데
첫 자리에 앉은 사람의 노래는
「어린 임금 보좌 못한 것이 한스러워 나란는 옮겨지고 임금에게 욕보이고 몸마저 버렸고나 지금 와서 생각하니 하늘 땅 보기에도 부끄러워 후회로다 왜 그 당년에 일찍기 도모하지 못하였던고」

두 번째 자리에 앉은 사람의 노래는
「선왕의 은총이 융숭했고 어명도 받았거늘 위태로운 때를 당하여 어찌 이 한목숨 아끼리요 가여워라 죽어서도 절의를 굳게 지킨 이름은 남으리 부자 같이 의를 취해 인(仁)을 이룩했으니까」

세 번째 자리에 앉은 사람의 노래는
`「벼슬이 높다한들 장한 절개 굽힐소냐 정의를 위해서는 끝내 고사리 캐가며 지내려 하네 죽어 가는 이한 몸 무엇을 말하리요마는 그 당년에 임금께서 침(―註⑦)에 계심을 통곡한다오」

넷째번 자리에 앉은 사람의 노래는
「보잘 것 없는 힘 없는 신하지만 담력만은 크다오 자기 일신 살기 위해 나라 망하는 것은 차마 볼 수 없는 일 죽을 때 지은 한마디 노래는 바르고 착한 말이다 능히 두 마음 가진 사람들을 부끄럽게 할 수 있었다네」

다섯 번째 자리에 앉은 사람의 노래는
「그 당시의 슬픔이야 어떠하였으리오마는 다만 죽어 갈 뿐이지 후일의 명예를 생각할 건가 기나긴 앞날에 부끄러움을 씻기 어려운 것은 일찍기 집현전에서 상주는 글을 쓴 일이구나」

복건을 쓴 사람이 머리를 긁적리며 다음과 같이 길게 노래 불렀다.
「눈을 들어 산하를 바라보니 옛 모습과 달라졌고 신정에 함께 모여 초나라 죄수의 슬픔을 맛 보았네 아차하면 흥하고 망하니 놀란 마음 창자가 씻어지고 누가 충신이고 간신인지 분통이 터져 눈물이 쏟아지네 율리의 맑은 바람에 도원량(陶元亮)이 늙었고 `그래도 한편의 야사(野史)가 후세에 전했으니 천추에 두고두고 선악의 교훈이 될 수 있으리」

복건 쓴 사람이 노래를 다 읊고 나서 자허에게로 돌린다 자허는 원래 세상 일을 분개하고 한탄하는 사람이라 눈물을 닦고 슬픔 음성으로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
`「지나간 일을 누구에게 물어보리 황폐하고 처량한 산에는 흙언덕이 하나 뿐일세 깊은 한은 정위의 죽음이요 애달픈 넋은 두견의 수심이네 고국에는 언제나 돌아 갈고 강루에 올라 이날을 같이 지내네 슬프고 처량한 노래 두서너 곡을 마치니 갈대꽃에 어스름 달이 비친 쓸쓸한 가을이로세」

시 읊는 소리가 그치니 좌중이 모두 슬픈 기색으로 눈물을 흘린다. 좀 있으니 씩씩하고 호걸스러운 한 대장부가 나타나는데 키가 훤칠하고 용기가 있어 보이며 얼굴을 무르익은 대추 빛같고 눈은 샛별같이 빛이 난다 문산의 의리와 중자의 청빈으로 위풍이 늠름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존경심이 우러나게 하였다. 임금에게 문후를 드린후 앞에 있는 다섯 사람을 둘러 보며 하는 말이
「슬픈지고 썩은 선비들이여. 함께 일을 성취할 수 없다」 하며 검을 빼들고 일어나 춤을 추는데 비통한 노래는 강개(慷槪)하고 목청은 큰 종소리와 같았다. 그의 노래는 다음과 같았다. 「바람이 적막하고 쓸쓸함이여 나뭇잎이 찬 물결에 떨어지도다 칼을 어루만지며 휘파람 길게 부니 하늘엔 북두칠성이 찬란하고나 살아서는 충성과 효도를 다하고 죽어서는 씩씩한 넋이 되련다 이 내 마음을 무엇에 비길건가 중천에 떠 있는 밝고 맑은 하나의 달이로다」

아아 애당초 잘못된 계획이라 썩은 선비를 책망해서 무엇하리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달은 검은 구름에 가리우고 비가 뿌리고 몰아치며 다급한 우뢰 소리가 크게 진동하니 모두들 어느 사이엔가 흩어진다. 자허 역시 놀라서 잠에서 깨어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자허의 친구 매월거사(梅月居士=金時習)가 이 말을 듣고 통탄하여 하는 말이
「대저 자고 이래로 임금이 혼미하고 신하가 어두우면 결국 나라를 망하게한 일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나라의 형편을 보면 임금은 현명하시고 여섯 사람의 신하들은 모두 충의의 신하이다. 이런 임금과 신하가 있는데도 이렇게 참혹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아 형세가 이렇게 만든 것이니 하늘에 돌릴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선한 이를 복 주고 악한 자에게 화를 주는 것이 하늘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도대체 하늘에도 돌릴 수 없다면 아득하고 막막하여 이 이치를 알수가 없고나. 하늘과 땅은 유유한데 뜻있는 선비들의 한을 더하기만 할 뿐
「지나간 일을 누구에게 물어보리 황폐하고 처량한 산에는 흙언덕이 하나 뿐일세 깊은 한은 정위의 죽음이요 애달픈 넋은 두견의 수심이네 고국에는 언제나 돌아 갈고 강루에 올라 이날을 같이 지내네 슬프고 처량한 노래 두서너 곡을 마치니 갈대꽃에 어스름 달이 비친 쓸쓸한 가을이로세」이다」

라고 다음과 같이 시를 지어 화답하였다.
「만고에 슬프고 허무한 일 저 하늘에 새 한 마리 지나가네 찬 연기가 동작대에 서려 있고 우거진 가을 풀은 장화대를 덮었구나 아아 요순 시절 아득한 옛날인데 분분한 탕무의 일만 많아 지네 달은 밝고 상강 물 훤히 넓은데 죽지가가 구슬프게 들려 오는구나」

선생이 일찍이 단종과 六신 및 최연촌 덕지(崔烟村 德之)를 모시고 강가에서 놀면서 시를 지어 화답하는 꿈을 꾸다가 깨었는데 느낀 바가 있어 글을 적고 이름하기를 「몽유록」이라 하니 비록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하나 그 뜻은 같은 것이다.
(선생의 평생 저술한 기록을 모두 손수 불태웠는데 「탄세사」와 「몽유록」두 편만이 요행이도 타지 않았다. 그 중에서 원문「요순」으로부터 「그른것이다」까지 九一의는 전에 책을 발간할 때에 빠졌던 것인데 이번에 장릉지(莊陵誌)에서 적어 넣었다

그러나 확실히는 알 수 없으므로 원문에 글줄을 한옆으로 써서 다시 상고함이 있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달은 검은 구름에 가리우고 비가 뿌리고 몰아치며 다급한 우뢰 소리가 크게 진동하니 모두들 어느 사이엔가 흩어진다. 자허 역시 놀라서 잠에서 깨어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자허의 친구 매월거사(梅月居士=金時習)가 이 말을 듣고 통탄하여 하는 말이
「대저 자고 이래로 임금이 혼미하고 신하가 어두우면 결국 나라를 망하게한 일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나라의 형편을 보면 임금은 현명하시고 여섯 사람의 신하들은 모두 충의의 신하이다. 이런 임금과 신하가 있는데도 이렇게 참혹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아 형세가 이렇게 만든 것이니 하늘에 돌릴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선한 이를 복 주고 악한 자에게 화를 주는 것이 하늘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도대체 하늘에도 돌릴 수 없다면 아득하고 막막하여 이 이치를 알수가 없고나. 하늘과 땅은 유유한데 뜻있는 선비들의 한을 더하기만 할 뿐 이다」

라고 다음과 같이 시를 지어 화답하였다.
「만고에 슬프고 허무한 일 저 하늘에 새 한 마리 지나가네 찬 연기가 동작대에 서려 있고 우거진 가을 풀은 장화대를 덮었구나c 아아 요순 시절 아득한 옛날인데 분분한 탕무의 일만 많아 지네 달은 밝고 상강 물 훤히 넓은데 죽지가가 구슬프게 들려 오는구나」

선생이 일찍이 단종과 六신 및 최연촌 덕지(崔烟村 德之)를 모시고 강가에서 놀면서 시를 지어 화답하는 꿈을 꾸다가 깨었는데 느낀 바가 있어 글을 적고 이름하기를 「몽유록」이라 하니 비록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하나 그 뜻은 같은 것이다.
(선생의 평생 저술한 기록을 모두 손수 불태웠는데 「탄세사」와 「몽유록」두 편만이 요행이도 타지 않았다. 그 중에서 원문「요순」으로부터 「그른것이다」까지 九一의는 전에 책을 발간할 때에 빠졌던 것인데 이번에 장릉지(莊陵誌)에서 적어 넣었다

그러나 확실히는 알 수 없으므로 원문에 글줄을 한옆으로 써서 다시 상고함이 있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歎世詞 (탄세사)

이 탄세사는 公께서 서기 1452년-1453년 集賢殿에 근무할때 문학과 덕망이 높이 알려져 있었는데 端宗이 왕위를 계승하자 8명의 王子가 强盛 하여 인심이 불안하여 지니 이 노래를 지은 것이라 한다.

단종 사모하는시

관란정에서 청령포에 계신 단종을 사모하면서 읊은 시임

“ 간밤에 우던여울 슬피울어 지나가다
이제와 생각하니 님(任)이 울어보내도다
저물이 거슬러 흐르고저 나도울어 보내도다"

“ 사모친 원한의 장강토목 베노나
갈대꽃과 단풍은 차가와서 우수수 분명 날니라
이곳은 귀양온곳 달밤에 혼백은 어디에서 노는고"

-청구영언세서-

월계도 (月計圖)

  • 서기 1452년 문종2년 文宗이 昇遐하시고, 端宗이 12歲의 어린나이에 登極하시니 國事가 점점어 지러워지고 政變의 先見이 있으므로,稱病으로 辭職하시고 원주 松林로落鄕하였다.
  • 公께서 落鄕시니 포천 縣監 權琛(권침)께서도 고향 橫城 屯屯里에 낙향하여 隱居 生活을 하였다. 두분께서는 交誼하여 서기 1453년-1455년6월 相互 往來를 하시었다.
  • 이때 포천공께서는 청소년시절 관란공과 月計圖를 硏究하였는데, 이때서야 완성 할 수 있었다.
  • 이것은 農民들의 所得增大에 寄與하고자 작성된것으로써,월계도 眞本은 확인할수없으나 진본사진을 확인할수 있었으며 내용을 分析하기가 불가능 하였다.
  • 진본사진은 원주문화원에서 확인한 것이고 복사본 사진은 포천공 권씨문 중에서 제작된 것을 확인한후 그대로 다시 재현 복사한 것이다.
  • 월계도를 硏究하신곳은 석단이 설치되어 있고 사진에나와 있는 山은 雉岳山아래에 있는 德高山 마루에 달이 떠오르는것을 보시고 그해의 農事의 凶作 과 豊作을 豫告 할 수 있게 作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