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Wonju Won's clan
元氏東來始祖(원씨동래시조)
元氏(원씨)가 중국으로부터 한국에 뿌리를 내리게된 것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원씨가 발상한 것은 중국 주나라 왕실의 후손 元喧公(원훤공)이 衛國의 君主가 되시어 원씨의 創世라는 문헌이 있으니 원씨가 이땅에 동래하여 귀화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350여년전 고구려말이나 신라중엽 이후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이 姓을 사용한 것은 최초에는 왕실에서, 그 다음은 귀족이 사용하다가 국가공신에게 왕이 賜姓을 하다가 일반적으로 사용한 시기가 이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라로부터 1.300년동안 많은 충효와 문인, 재상, 현신과 무인, 문학으로 이름을 드높혔다.
東來始祖(동래시조) 平章事公(평장사공) 元鏡公(원경공) 行跡(행적)
元鏡公(원경공)은 위 나라 宗室 公族이신 正卿大夫 元喧公(원훤공) 41世孫으로 唐나라 太宗 貞觀 年間에 勳爵(훈작)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平章事)에 이르렀다. 동방 고구려 보장왕 2년 (서기643년)에 당나라와 친선을 회복키위하여 사신을 당에 보내어 道藝之學에 능한 學者를보내 줄것을 秦請(진청)하시니 唐太宗께서 道學에 明哲하신 八學士를 선발하여 파견중 한분이 平章事公 元鏡이시다. 七學士와 함께 국내를 순회하면서 禮學과 道學에 萬民을 敎化한 功績(공적)으로 고구려 佐命功臣에 策勳되시었다. 서기 645년에 소문의 난(蘇文의亂)이 일어나자 평장사공은 勅旨(칙지)를 받고 7학사와 함께 신라에 이르니 선덕왕은 導迎和樂도영화락)하여 上賓(상빈)으로 대하니 元公 일행은 선덕왕을 도와 道藝之禮樂(도예지예락)으로 萬民敎化에 盡心全力(진심전력)하여 改修以德(개수이덕)으로 國泰民安(국태민안)하니 높은 爵位를 賞賜(상사)하시었다. 동래시조元鏡(원경)은 8학사중 한분으로 康叔公(강숙공)의 14世孫인 元喧(원훤)公의 41세손인데 그의 아들 원각(元角)으로부터는 40세손이다.
姓名 | 前名 | 貫鄕號 | 爵位 | 本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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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 鏡 | 慶 | 原城人號 | 金紫光祿大夫 門下侍中平章事 高句麗佐命功臣 | 原州人 |
洪 鏡 | 天華 | 江南人號 | 封 德山村主 改封 唐城伯 太子太師 參考;南陽洪氏族譜始祖天河十世孫殷悅中祖 | 南陽人 |
辛 鏡 | 河鏡 | 隴山人號 | 金紫光祿大夫 門下侍中平章事 新羅 波樂師 | 靈山人 |
郭 鏡 | 若魯 | 弘農人號藮贸號 | 金紫光祿大夫 門下侍中平章事 | 玄風人 |
吉 鏡 | 璫 | 號叔達號 | 銀靑 光祿大夫 政堂文學 封海平伯 | 善山人 |
池 鏡 | 自雲 | 號岩谷號弘農人 | 金紫光祿大夫太保 平章事 | 忠州人 |
房 鏡 | 季弘 | 三韓壁上功臣 三重大匡輔國 | 南陽人 | |
魏 鏡 | 齡 | 門下非侯]阿食 尙書侍中 封懷州君 | 長興人 |
[ 舊 唐書 後晋平章事 劉 撰 ]
八 學 士 行 跡 (8학사행적);족보서문 참조
8학사가 고구려를 떠나 대동강을 건널때에 산천 문물이 서로 알맞게 어울어지서 아름다움과 기자의 옛 모승리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함께 읊었다.
절은 깊은산 물길이 다한 곳에 있고,
백구와 황 학은 함께 배회 하도다 .
기샌 파도가 문앞에 출렁이니 청뢰가 장관이며,
모래 사장에 늘어선 집에는 만설이 쌓였구나.
녹음 속에 부는 바람은 묻 통소 소리와 같고,
빗속에 붉은 비단은 해당화가 핀것일세.
아랑이 품은 뜻은 고금에 한가지며,
경치 찾는 나그네는 돌아감을 아쉬워 하네.
계곡있고 돌 없으면 계곡은 돌이되고,
돌이있고 계곡이 없으면 돌은 신기하재 않으리.
이 땅에는 계곡있고 돌이 있어,
하늘이 절경을 열있음은 나의 시를 위함일세.
높은 누각에 올라바라보니 허공에 뜬것같과,
고기잡는 어부의 생애는 나와 같지 아니하리.
뜰앞의 꽃이 지니 봄은 이미 깊어감을 알수 있고,
푸른말 사이로 비치는 푸른솔의 그림자는 더욱 쓸쓸하여라.
鯨 波 接 戶 晴 雷 壯
(경파접호청뢰장)
沙 岸 連 軒 晩 雪 堆
(사안연헌만설퇴)
風 襄 綠 琴 森 發
(풍양록금삼뢰발)
雨 中 紅 錦 海 棠 開
(우중홍금해당개)
阿 郞 有 意 同 今 古
(아랑유의동금고)
探 勝 遊 人 珍 未 廻
(탐승유인진미회)
有 溪 無 石 溪 還 野
(유계무석계환야)
有 石 無 溪 石 不 奇
(유석무계석불기)
此 地 有 溪 兼 有 石
(차지유계겸유석)
天 開 勝 地 我 爲 詩
(천개승지아위시)
高 臺 臨 眺 若 氷 虛
(고대임조약빙허)
漁 釣 生 涯 我 不 如
(어조생애아불여)
花 落 庭 前 春 思 晩
(화락정전춘사만)
碧 簾 松 影 更 蕭 疎
(벽렴송영갱소소)
8학사가 신라로 옮겨온 후에 제주도 御風樓(어풍루)에 올라가 世情을 살피고 다같이 한줄씩의 시를 지어 한데 묶어 七律詩(칠률시)를 지으니 모두 그 이름을 韻(운)字로 하였다.
금악에롤라바라니
아득히망망하고
첩첩마위에 올라서니
아늘이 가깝도다
구만리북극성은
신발을끄는것같고,
삼천리 동해바다는
바지를걷고 건널듯하다.
서쪽을 바라보니
인경의 황제가 보일듯하고,
남쪽을 바라보니
일본왕을 잡을듯하다.
아름다운 절경이
한없이널려있는 속에있으리,
마치수레를타고 하늘을나는
내몸과 같고나
登 登 錦 嶽 眄 蒼 茫
(등등금악면창망)
信 步 層 巖 近 太 陽
(신보층암근태양)
九 滿 北 辰 宜 曳 履
(구만북진의예리)
三 千 東 海 可 裳
(삼천동해가건상)
西 瞻 庶 激 燕 京 帝
(서첨서경연경제)
南 望 將 擒 日 本 王
(남망장금일본왕)
領 略 勝 區 無 限 景
(영략승구무한경)
憑 虛 擬 駕 大 鵬 翔
(빙허의가 대붕상)
原州元氏系派別 始組(원주원씨계파별 시조)
註序(주서)
우리나라에 원(元)씨의 성이 출현한지는 약1.400여년이 되었으나 전래(傳來)의 기록이 없고, 원주원씨(原州元氏) 3系(계) 始祖(시조)가 상이(相異)하고 족보(族譜)도 각수계대(各修繼代)하니 실제로 동성동본(同姓同 本)이면서 이계(異系)가 된것인지 이계이면서 동성동본이 된것인지 인식이나 지식에 결정적인 근거가 없어 그 확실성을 의심하게 되고 그것을 풀어보려고 노심초사(勞心焦思)하였다. 그러나 세대(世代)가 유원(悠遠)하고 문헌(文獻)의 불비(不備)로 박고명징(博考明徵) 할 길이 없으니 혹시 망의(妄議)나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戰戰兢兢)하는 바이다.
侍中公系(시중공계)
原 城 伯 系(원성백계)
瓮岩,耘谷系(옹암,운곡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