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간공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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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향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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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 峰 書 院 (칠봉서원)

  • 칠봉서원은 高麗 末 隱士 耘谷先生을 享祀하는 곳이다.
  • 서기 1,703년 숙종29년 癸未에 生員 元(원익),進士 尹億의 上訴로 觀瀾 께서 享祀 되었다.
  • 칠봉서원은 원주시 호저면 칠봉에 所在 되었으나 서기1950년 6.25전쟁으로 燒失 되었으며, 서기 1,998년 횡성군 서원면 창촌리에 복원되어 梅峰書院(매봉서원)으로 懸板되었다.
  • [原州市 好楮面 七峰 七峰書院 址圖]
    (옛소재;원주시 호저면 칠봉리 칠봉서원지도)
  • [復原建立 梅峰書院⇒ 所在;橫城郡 書院面 昌村里]
    (복원건립 매봉서원⇒소재;횡성군 서원면 창촌리)

봉안하는글(奉安文)甲申年 肅宗30年 서기 1,704年 문학으로 이름이 높았는데 진퇴하기를 의로만 하였도다 홀로 강상(綱常)을 지키니 그 모습이 찬연하여라 옛 기풍이 늠연하니 듣는 사람 감동하도다 옛 집을 정표(旌表)하니 그 은전이 빛나도다 조정의 명령을 따라서 칠봉서원에 받들어 모십니다 그 옛날 운곡(耘谷) 선생은 백대를 높이는 어른이라 당당한 크고 늪은 절개는 전후로 잘 부합이 되는구나 오르니리는 혼령이여 좋은 제수 향그러운 것이 천고에 복주고 깨우쳐 주시며 온누리에 광명을 주옵소서. 「禮曹 回啓癸未10月」

龍 溪 書 院 (용계서원)

  • 용계서원은 肅宗10年 서기1684年 甲子에 特命으로 建祠하고,英祖 35年 서기 1759年 己卯에 創建되었다.
  • 正祖10年서기1786년 丙午龍溪書院으로 陞하고 生六臣 여섯분을 享祀하였다.
  • 高宗5年서기1868年 戊辰에 대원군의 서원철 폐령에 따라 노항동으로 옮겨서 사당으로 사용하다가 서기1976年 丙辰에 영천땜건설로 현위치로 옮겨 翼工系 形式으로 建築된 樓閣式팔작집이다.
  • 현재는 耕隱 李孟專先生한분과 直系 5世孫까지 位牌를 모시고 直系宗孫이 관리하고 있다.
  • 1868년 정조10년 현판

[소재;경북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유형문화재 제55호)]

肅 慕 殿 (숙모전)

  • 숙모전은 世祖에의해 寃痛하게 왕위를 빼앗긴 端宗을 모신 正殿과 東( 文人 47 位), 西(武人48位)에는 癸酉靖難에 寃死한 황보인, 김종서,종분三相, 안평대군, 금성대군등 宗室의 位牌를 모신곳이다.
  • 端宗의 復位를 꾀하다가 참형을 당한 死六臣과 그외 죽음을 당한 원혼과 生六臣등 忠義 절사를 모신 곳이다.
  • 서기1456년 김시습이 처음이곳에 와서 壇을 모아 死六臣초혼 제사하고 1457년 세조가 속리산을 거쳐 동학사에 들렸다가 초혼단을 보고 감동하여 팔폭비단에 寃籍(원 적)이란 제목에 억울하게 죽은 자의 명단을 적어 儒佛이 共祀토록하고 賜牌하였다.
  • 서기 1904년 肅慕殿이라 賜額하였다.
  • 祭享日 ; ●.春享;陰3月15日 ●.冬享;陰10月24日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기념물제18호 肅 慕 殿]

書 山 書 院 (서산서원)

  • 서산서원은 肅宗 癸未 서기1703년에 創建되었으며 癸巳 서기1714년에 西山書院을 賜額(사액) 되었다.
  • 서산으로 賜額함은 서원의 동쪽에 백이산이 있고 육선생의 절의가 伯夷에 比肩된다는 所以이다.
  • 大院君때 철폐되었다가 서기1980년 辛酉에 116년만에 정부의 보조와 士林 後孫들의 誠金으로 復原 착수하여 서기 1984년 甲子에 竣工하였다.
  • 이곳은 端宗의 臣下로서 節義를 지킨 生六臣 여섯분을 享祀하였는데,
    • 1.靖節公 漁溪 趙旅 先生.
    • 2.靖簡公 耕隱 李孟專 先生,
    • 3.貞簡公 觀瀾 元昊 先生,
    • 4.淸節公 梅月堂 金時習 先生,
    • 5.靖肅公 文斗 成聃壽 先生,
    • 6.文貞公 秋江 南孝溫 先生이시다

「書院 內部 本堂」

「生六臣의 行蹟記錄六角碑碣」

「生六臣位牌모신 忠義祠」

[忠義祠內 生六臣 位牌] 忠義祀내에는 두분씩 位牌가 모셔져 있는데 좌측부터 조여, 이맹전, 원호, 김시습, 성담수, 남효원선생 순이다.

常 享 祝 文 (상 향 축 문)

  • 1.靖簡公 耕隱 李孟專 先生 세상을 피하여 눈을 돌리는 모습 대궐 쪽을 향해서 얼굴을 대하기도 꺼렸습니다. 한결같은 굳은 지조 백대에 다시 없는 지조입니다.
  • 2.靖節公 漁溪 趙旅 先生 도(道)를 믿기를 돈독히 하고 의(義)에 나가기를 깊게 하였습니다. 고기 낚는 자취에 고사리 캐는 마음입니다.
  • 3.貞簡公 觀瀾 元昊 先生 옛임금의 상복을 입고 새 조정의 부름을 물리쳤습니다. 오직 굳고 깨끗한 정절 천추에 누가 따를 수 있겠습니까
  • 4.淸節公 梅月堂 金時習 先生, 인간 세상 방랑하며 강상(綱常)을 심었고 광채는 일월과 다투고 이름은 천추에 높았습니다.
  • 5.靖肅公 文斗 成聃壽 先生 忠孝의 가문인데 은둔하는 신세였습니다. 한가닥 실오라기로 윤리를 지켰는데 온누리가 법받고 격려하였습니다.
  • 6.文貞公 秋江 南孝溫 先生 昭陵의 추복을 청원하고 母岳에 올라가 슬픈 마음 호소하였습니다. 우뚝하게 節槪높고 의연한 의리를 밝혔습니다.